알고보니 지난 1년간 구직활동 조차 안한 ‘좌절’의 표현
구직활동 했지만 실패해 포기한 구직단념자도 최다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우리나라의 ‘쉬었음’ 인구가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은 있으나 구체적인 이유 없이 쉬고 싶어 일을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이들의 속사정은 달랐다. 일할 능력이 있지만 일할 의지가 없게 된 이유는 취업을 준비하며 겪은 ‘좌절감’의 영향이 컸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이유경(35) 씨는 재작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 다음 현재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쉬고 있다. 말 그대로 대학원생도, 취업준비생도 아닌 그냥 ‘쉬었음’ 상태다. 아르바이트조차 하지 않는 자신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이 씨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2년동안 취업을 준비했지만 연거푸 고배를 마셨고, 마지막에 겨우 취업한 회사에서는 주6회 근무에 야근을 이틀에 한번꼴로 했다. 이 씨는 “취업을 하는 것도 자신이 없고 회사를 다니는 것도 엄두가 안났다”며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여력조차 안나는 상태”라고 전했다. 이른바 ‘번아웃’ 상태가 이씨의 현재 상황이었다.
퇴직 후 집에서 쉬고 있는 한 60대의 사정도 비슷했다. 광주에서 취미생활로 서예를 하며 쉬고 있는 최모(64) 씨는 재취업이 힘들어 어느 순간부터는 구직활동 조차 안하고 지낸다. 남들은 “쉬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답답할 때가 많다. 최 씨는 “구직활동을 했습니까 물으면 안한 것은 맞지만 왜 안하게 됐는지를 살피면 결국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다”라며 “60대가 할 수 있는 것이 다 단순 일용직들뿐이다. 고학력에 회사생활 한 사람들이 갑자기 이런 일을 하고 싶겠느냐”고 했다.
오랜 구직 활동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취업을 포기하는 ‘구직 단념자’들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구직단념자는 월평균 51만6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만1000명(6.5%)가량 늘었다. 현재와 같은 기준으로 구직단념자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후 1∼9월 구직단념자 수는 올해가 가장 많았다.
구직단념자는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지난주에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직장은 원하고 있고, 지난 1년동안 구직활동을 해왔지만 일자리가 없어 못한 사람을 뜻한다. 쉬었음 인구와 다른 점은 1년동안 구직활동을 했다는 적극적 의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쉬었음’ 인구는 지난 1주동안 무엇을 했는지 물었을 때 아무것도 안하고 ‘쉬었다’고 답한 이들을 말한다. 즉 쉬었음 인구는 단순 지난주 활동을 묻는 것이고 구직단념자는 구직활동을 하다가 포기상태인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때문에 두 사항은 일정부분 겹치게 된다. ‘쉬었음 인구’가 지난 1년간 구직활동을 안한 이유가 ‘취업을 포기해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두 집단이 겹칠 수는 있다”면서도 “같은 개념은 아니다. 쉬었음 인구는 단순 지난주 활동을 묻는 것이라 더 광범위하고 구직단념자에게는 ‘1년 전에 구직활동을 했습니까?’라는 항목을 더 묻기 때문에 수치가 더 낮게 나온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냥 ‘쉬었음’ 인구 상당수는 사실 고용한파에 따른 비자발적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고, 구직단념자들은 구직활동에 지쳐 구직을 포기한 것으로 모두 현재의 척박한 고용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다만 이들은 ‘비경제활동인구’기 때문에 실업률 통계에서 잡히지 않는다. ‘쉬었음’ 인구가 늘어날수록 실업률은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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