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은 국정을 농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 헌법재판소 고위관계자가 대통령 탄핵심판이 끝난 뒤 남긴 말이다. 최순실에게 법적 책임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던 사업가가 장·차관급 인사를 좌우하고, 대기업을 상대로 거액을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최 씨가 아니라, 청와대 안종범 수석이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 씨가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팔아 일을 벌였다고 하기에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움직인 경위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는 사유로 파면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모펀드 사건에도 최순실 같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조 전 장관의 5촌 조카다. 고졸 출신에, 사실상 무직자였던 조 씨가 조 전 장관 가족으로부터 투자받은 금액은 모두 합해도 2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금융업계에서는 구멍가게 수준에 불과한 사모펀드 운용사가 시가총액 300억원이 넘는 코스닥 상장사 더블유에프엠(WFM)을 마음껏 요리했다. ‘기업 사냥’을 할 능력이 없던 조 씨가 WFM 지분을 인수하고, 주가를 조작하면서 70억 원대 자금을 빼돌릴 수 있었던 건 이 업체 대표였던 우모 씨와, 주식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한 저축은행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사업가였던 우 씨는 WFM이 허위성 공시를 하도록 하는 데 관여하면서도 50억 원 상당의 지분을 코링크에 ‘헌납’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30대 신용불량자가 코스닥 상장사를 잡아먹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이 어떤 동기로, 무엇을 대가로 움직였는지 밝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갖는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안의 진짜 피해자는 WFM 직원과 투자자들이다. 영어교육업체였던 이 회사는 조국 일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2차 전지 사업에 뛰어든 것처럼 포장됐고, 주가가 오르내리다가 결국 지금은 거래가 정지됐다.
여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업체 ‘익성’이나 WFM에 주식담보대출을 해 준 저축은행 소유주가 ‘몸통’이고, 정 교수는 피해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익성이 코링크에 관여했던 것은 WFM 인수가 이뤄지기 전이어서 사실상 무관하고, 저축은행 역시 돈을 대 준 역할은 했을 지언정 직접 허위공시를 띄우거나, 주가를 조작하는 실행은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녀 입시 비리 의혹에서도 ‘고작 표창장 하나 가지고 대규모 수사를 하느냐’고 주장하며 조 전 장관 가족이 검찰권 남용 피해자인 것처럼 묘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문과생이었던 조 전 장관의 딸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제1저자를 차지했던 의학논문은 대한병리학회가 직권 취소했다. 범죄가 되는지 여부를 떠나 자격이 없는 사람이 저자 행세를 한 사실이 공인된 셈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조 전 장관 딸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만들어 준 연구원을 보직 해임했다. 이 연구원은 정 교수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피해자는 따로 있겠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게 이번 정부의 모토였다. 피의자를 피해자로 치환하고 덮기에 급급할 게 아니다. 더욱이 혐의 사실은 시장 질서와 기회 균등 측면에서 공정성을 크게 해치는 내용이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히는 과정이라도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롭기를 바란다. jyg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