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상을 딛고 ‘개발도상국 신화’를 이룬 한국의 성장사 자체가 한국인 안에 숨쉬고 있는 ‘열정 DNA’의 발현이다. 뚜렷한 목표 의식과 목표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한국인의 에너지는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성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건국대 사학과 한상도 교수는 “다른 민족보다 인구도 적고, 숱하게 외세의 침입을 받는 와중에 고유의 문자와 언어를 보유할 정도로 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낙관주의와 책임의식, 뜨거운 에너지 등 열정의 발현이 고유의 문화 창달 등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의 ‘열정 DNA’는 도전으로 일군 현대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 뿐이던 한국에서 1970년 철강 산업이 뿌리를 내렸다. 당시 종합제철소 건설은 국내외의 숱한 반대와 회의적인 시선에 부딪혔고, 자금 조달이 어려워 대일청구권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외자를 차입해야 하는 고충을 겪었다. 제철소를 준공할 기술도 부족해 일본 기술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나고 지난해 10월 포스코는 일본보다 수준 높은 독자적인 기술로 인도네시아에서 동남아시아 최초의 일관제철소 건설권을 따냈다. 세계 철강시장의 50%를 차지하는 동남아 철강 시장에서 벌어진 한ㆍ중ㆍ일 3파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한국은 자원이나 자본 등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부족한 조건을 채워나가며 개발 신화를 쏘아올리기 시작했다. 1947년 설립 이후로 전후 복구사업부터 시작해 경부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 고리원자력 1호기 등 굵직한 공사를 도맡으며 시공능력을 키운 현대건설도 신화의 한 축이다. 1980년대~1990년대에 바레인, 사우디, 이란 등에서 중동신화를 쓴 현대건설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 플랜트 시장에 진출하며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도전 정신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빠른 적응력을 낳는다. 한때 IMF 시대의 시련을 종결시킬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IT는 벤처붐이 사그라드는 위기를 겪었지만 꾸준히 맥이 이어져 현재까지 IT 강국의 면모를 재확인시키고 있다.
열정을 통해 빚어낸 콘텐츠에는 국경을 넘어서는 매력이 있는 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드라마와 가요 등 대중문화계에 부는 ‘한류 열풍’은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영향을 넓히고 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할 때에만 해도 한국 대중문화의 자생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10년이 지나고 상황은 보기 좋게 역전됐다. 권상우가 출연한 드라마 ‘대물’은 한국에서 방영되기도 전에 일본에 판권이 판매됐고, 한류스타 이병헌이 출연한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인 일본 아키타는 드라마에 매료된 한류 팬들로 인해 특수를 누릴 정도였다.
한국인의 ‘열정 DNA’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정정당당히 승부를 내는 스포츠맨 정신을 만났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쇼트트랙 외에 동계스포츠라고는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피겨 여왕의 자리에 선 김연아 선수는 “잘 살아 보자”며 새마을운동에 매진했던 할아버지 세대, 배고픈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진 아버지 세대와 다른 G세대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며 한국인의 열정을 입증했다. 동양인은 불리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박태환 선수는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의 부진을 이겨내고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G세대 도전 정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도현정 기자@booung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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